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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종길 옮김/민음사 |
"만약 모든 것이 없어져도 그만 남는다면 나는 역시 살아갈 거야. 그러나 모든 것이 남고 그가 없어진다면 이 우주는 아주 서먹해질 거야. 나는 그 일부분으로 생각되지도 않을 거야. 린튼에 대한 내 사랑은 숲의 잎사귀와 같아. 겨울이 돼서 나무의 모습이 달라지듯이 세월이 흐르면 그것도 달라지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어. 그러나 히스클리프에 대한 애정은 땅 밑에 있는 영원한 바위와 같아. 눈에 보이는 기쁨의 근원은 아니더라도 없어서는 안되는 거야. 넬리. 내가 바로 히스클리프야. 그는 언제까지나, 언제나 내 마음 속에 있어. 나 자신이 반드시 나의 기쁨이 아닌 것처럼 그도 그저 기쁨으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서 내 마음 속에 있는 거야. 그러니 다시는 우리가 헤어진다는 말은 하지 마.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어릴적부터 자연스럽게 커가던 두 남녀의 사랑과 우정은 더 많은 시간이 흐르고 선택의 순간을 맞게 된다. 결국 폭풍우가 몰아치는 요크셔의 밤에 한 여자의 선택으로 세 남녀의 운명이 결정지어지고, 자신에 대한 캐서린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열등감과 분노에 휩싸여 폭풍의 언덕을 떠난 이방인 히스클리프는 수년 후 나타나 반평생에 걸쳐 광기어린 집념에 불타는 복수와 사랑으로 워더링 하이츠에 폭풍처럼 몰아친다. '폭풍의 언덕'엔 절대적인 선인도 악인도 없다. 순간의 선택들이 알 수 없는 운명으로 모두를 인도할 뿐이다.
"불행도, 타락도, 죽음도, 그리고 신이나 악마가 할 수 있는 어떠한 것도 우리 사이를 떼놓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당신 스스로 나를 버린 거야. 내가 당신의 마음을 찢어놓은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찢어 놓은 거야.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내 가슴도 찢어놓은 거야. 건강한 만큼 나는 불리하지. 내가 살고 싶은 줄 알아? 당신이 죽은 뒤에 내 삶이 어떨 것 같아? 아, 당신 같으면 마음속 애인을 무덤 속에 묻고도 살고 싶겠어?"
"나를 가만히 둬. 가만히 좀. 내가 잘못했다면 나는 그 때문에 죽는 거야. 그것으로 족하지! 당신도 나를 버리고 가지 않았어? 그러나 당신을 책망하지는 않겠어. 당신을 용서해. 당신도 나를 용서해 줘." 캐서린 아씨는 흐느끼면서 말했습니다.
그의 너무나도 강렬한 사랑과 광기는 그가 증오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 자신과 캐서린까지 파멸로 이끌어간다.
"내 눈에 그녀와 관련되지 않은 것이 뭐가 있겠어? 무엇 하나 그녀 생각을 불러 일으키지 않는 것이 있어야 말이지! 이 바닥을 내려다 보기만 해도 그녀의 모습이, 깔린 돌마다 떠오른단 말이야! 흘러가는 구름송이마다, 나무마다, 밤이면 온 하늘에, 낮이면 눈에 띄는 온갖 것들 속에, 나는 온통 그녀의 모습으로 둘러싸여 있단 말이야! 흔해 빠진 남자와 여자의 얼굴들, 심지어 나 자신의 모습마저 그녀의 얼굴을 닮아서 나를 비웃거든. 온 세상이 그녀가 전에 살아 있었다는 것과 내가 그녀를 잃었다는 무서운 기억의 진열장이라고!"
히스클리프의 말대로 죽음도 두 사람의 사이를 떼어놓진 못했다. 캐서린의 환영은 그가 죽는 그 순간까지 끊임없이 그에게 나타났으며 이는 그에게 기쁨과 동시에 헛된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고문과도 같았다. 세월이 흐르고 복수가 완성되어갈수록 그의 격정과 분노는 다소 소진되었지만 캐서린에 대한 사랑만은 불멸이었던 것이다.
최후의 순간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의 환영에 기뻐하며, 그가 원했던 방식대로 지하에 묻힌다. 그리고 더욱더 황량해진 폭풍의 언덕을 떠난 드러시크로스에서 헤어튼과 캐서린의 새로운 시작을 예고하며 '폭풍의 언덕'은 결말을 맺는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어찌보면 잔인하고 타락한 악마와 같은 인간일뿐인 히스클리프를 보고 연민을 느끼게 하는가? 그의 광기와 격정으로 점철된 사랑, 타인에게서 이해받을 수 없는 집념에 찬 사랑과 이방인으로서 어렸을적부터 받은 설움, 폭풍의 밤 홀로 떠나 수년간 그의 가슴속에 들어찼을 열등감과 배신감, 캐서린의 죽음 뒤에도 포기하지 못한 재회에 대한 괴로운 희망과 같은 것들이 그에게 손가락질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깊은 슬픔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by Piotr Czechowski
by Maria Bosten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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