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눈먼 자들의 도시 - 껍질을 벗은 인간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지옥

눈먼 자들의 도시 -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해냄(네오북)

◆ 책 이미지 출처 : 알라딘


◆ 어떤 책인가?

  장님이 되는 원인도 치료방법도 알 수 없는 전염병이 한 남자를 시작으로 도시 전체로 퍼져나간다. 그러나 단 한 여자만이 이 전염병에 걸리지 않고 앞을 볼 수 있다. 정부는 눈 먼 사람들을 감금시켜놓고 부실한 식량을 공급할 뿐 방치해둔다. 그리고 감금된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의 지옥과 같은 생활이 시작된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


◆ 소장할만한 가치가 있는가?

  몇가지 흠이 보이긴 하지만 가벼운 문학작품들과는 달리 읽고 나서도 확실히 남는 것이 있다. 문학 작품의 구입을 꺼리는 사람이 아니라면 소장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묘사 수위가 상당히 높아 사람에 따라서는 읽기가 매우 꺼려질 것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앞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여자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눈이 멀어 버린 남자. 눈을 떠도 모든 것이 새하얗게 보이기만 한다. 의사가 진찰하지만 원인도 병명도 밝혀지지 않는다. 그 남자를 돕는척하며 차를 훔친 남자, 그 남자를 진찰한 의사, 그 의사의 병원에 방문한 사람들 등 차례차례 수많은 사람들이 눈이 머는 병에 전염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역시 알 수 없는 이유로 단 한사람, 의사의 아내만이 눈이 멀지 않는다. 특히나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만이 가득한 가운데 그녀는 축복받은 듯 하다. 하지만 유일하게 눈이 보이는 사람이라는 부담과 그에 따른 책임을 느끼고, 지옥과 같은 눈먼 자들의 도시를 보며 그녀는 괴로워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능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사람들은 껍질을 벗어버린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고 습관적으로 지켜오던 예의나 도덕 등은 금새 벗겨진다. 거리낌 없이 성추행을 하고 아무데서나 찌꺼기를 토해낸다. 다른 사람의 몫은 생각하지 않고 배급된 물자를 멋대로 가져가고 총으로 위협하며 성상납까지 요구한다.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인간의 추악한 본성은 무겁고도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과연 우리는 사람의 눈이 있는 곳과 사람의 눈이 없는 곳에서의 행동이 일치하는가? 거의 그렇지 못하다. 그렇기에 그야말로 사람답지 않은 눈먼 자들의 소행을 보면서도 이것은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라고 쉽게 부정할 수가 없다.

인간은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아니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가?

  '눈'이라는 중요한 신체기관의 마비를 통해 사람들은 각자의 본질과 본능에 가까워진다. 그렇게 나타난 사람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인간은 악한가, 선한가? 아니면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은가? 이는 오래전부터 철학자와 종교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논의되어온 주제이다. 그러나 여러가지 주장이 존재할 뿐 정답은 없다.

  나 역시 쉽게 결단을 내릴 수는 없으나 본성이 어떻든 인격과 품성의 형성에는 환경이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인간의 본성을 선과 악이라고 나누기는 힘들지만-식욕, 성욕, 자아 발현의 욕구,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안전에의 욕구와 같은 것들을 선이나 악이라고 분류할 수는 없다-선하게 태어났든 악하게 태어났든 둘 다 아니든 간에 교육, 환경, 인간 관계 등 후천적 요인을 통해 본성의 상당 부분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눈먼 자들은 눈을 떴으나 남겨진 것은 과연 희망인가

  그렇게 한 사람을 제외한 모두가 눈이 멀어 버리고 지옥 같은 생활을 계속하던 가운데 갑자기 한 사람씩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러나 모두가 다시 눈을 뜬다고 해도 갈 길은 험난해 보인다. 그동안 서로에게 남겨진 크나큰 불신과 죄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게다가 국가, 정부, 경찰과 같은 감시자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은 과연 서로를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의문들을 남기고 이야기는 끝나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