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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문학]살인자의 건강법 - 아무도 책을 읽지 못하는 현실

by 땔나무 2010.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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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건강법 - 8점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문학세계사

  아멜리 노통브의 '적의 건강법'을 읽은 뒤 그녀의 또다른 대표작 중 하나인 '살인자의 건강법'을 읽기 시작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유명 작가 프레텍스타 타슈는 희귀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작가들의 인터뷰를 받게 되는데,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살이 찐 기이한 외모와 상대방을 무력하게 하는 궤변으로 기자들을 차례차례 정신적으로 파괴시키지만, 마지막이자 다섯번째로 인터뷰를 하러 온 기자의 인터뷰에 이르러서는 상황이 변한다.

  타슈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면서도 아무도 자신의 책을 읽지 않는다는 모순적인 말을 한다. 그를 인터뷰하러 왔다는 기자들부터가 그의 책을 읽지 않았으며, 읽었다고 하는 사람들조차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오늘날의 독서라는 것은 미디어의 책소개로 색안경을 쓰고 하게되어 순수한 상태에서 받아들이기 어렵고 유명한 작가가 쓴 것은 무엇이든 지나치게 격상되는 경향이 있는것이 사실인데다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을 읽는 사람도 많다. 또한 정말로 우리는 '일리아드'와 '오뒷세이아' 및 여러 명작들이 위대한 작품이라고 배웠을 뿐이지 그것을 원전으로 읽고 이해한 사람은 극히 적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나의 독서 생활에 대해서도 반성하게 되었는데 타슈가 비판한 것들은 대부분 나의 고민과도 연관된 것이다. 과연 나는 한 권의 책을 읽을때마다 그 책을 통해 나를 변화시키는가? 책을 읽기 전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되는가?

  한번은 '장미의 이름'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방대한 종교와 기호학에 관한 말들을 주석을 보고도 거의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끝까지 읽었다. 공부를 할 때도 알기쉬운것이나 수준에 딱 맞는것만 해서는 실력이 늘지 않듯이 책도 이것저것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타슈의 비판이 전반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기자가 당신이 생각하는 독서 방법만 있는것은 아니라고 했듯이 반드시 맞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말장난으로 끝날 것만 같았던 이야기는 타슈의 유일한 미완성 소설 '살인자의 건강법'이라는 거대한 진실이자 허구에 이르러 긴장감을 더한다. 이 아멜리 노통브의 첫 소설은 프랑스 문단의 찬사를 받을만하며 나의 독서 생활을 반추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사실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읽는다 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한다 해도 잊어버린다.' 이토록 실상을 명쾌하게 요약하는 말이 어디 있겠소.

이 시대처럼 가증스러운 시대는 없었다오. 한마디로 허위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시대요. 허위적인 건 불성실하거나 이중적이거나 사악한 것보다 나쁘지. '체면'이니 '자존심'이니 하는 말로 장식되는 졸렬한 자기만족을 맛보기 위해서 말이오. 또 남들에게도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오. 하지만 정직하고 사악한 거짓말, 남을 궁지로 빠뜨리기 위한 거짓말을 하는게 아니지. 사이비 거짓말, '라이트'한 거짓말을 하는 거요. 그러니까 미소를 띤 채로 욕을 해댄다고, 호의를 베풀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오.

"...글쓰기란 어느 모로 보나 골치 아픈 일이오. 한번 생각해 보시오. 종이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나무를 베어야 하는지, 책을 보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간이 필요한지, 책을 찍어내는 데 돈이 얼마나 드는지, 혹시라도 책을 사는 사람이 있다면 거기에 돈이 얼마나 들지, 그렇게 책을 사서 읽는 불운아들이 얼마나 지루할지, 책을 사 놓고도 읽지 않는 파렴치한들이 얼마나 양심의 가책을 느낄지, 읽으면서도 이해 못 하는 속 좋은 멍청이들이 얼마나 울적할지, 끝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독서 혹은 비 독서와 결부된 대화가 얼마나 거만함으로 가득할지, 그리고 기타 등등하며! 그러니 나한테 글쓰기가 강간처럼 해롭지 않다느니 하는 얘기일랑 하지 마시오.“

지금으로부터 이십사 년 전, <살인자의 건강법>에 대해 신문에 어떤 서평이 올랐는지 아시오? '상징으로 가득한 동화적인 소설, 원죄, 즉 인간 조건에 대한 몽환적인 은유'운운. 그러니 읽기는 하지만 읽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밖에! 밝히기 위험천만한 사실을 난 얼마든지 글로 써도 되오. 다들 은유로만 볼 테니까. 별반 놀라운 일도 아니오. 사이비 독자는 잠수복을 갖춰 입고, 유혈이 낭자한 내 문장들 사이를 피 한방울 안 묻히고 유유히 지나가게 마련이거든. 가끔씩 탄성을 지르기도 할 거요. '멋진 상징인걸!' 이런 게 이른바 깔끔한 독서란 거요. 기막힌 독서법이지.

- 아멜리 노통브, '살인자의 건강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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